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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생활개관

생생하게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선사문화탐방!!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세요!!

석장리박물관 석기시대 생활관 모습

구석기인들은 주로 나무열매나 뿌리 등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았는데, 이 때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 또는 동물의 뼈나 뿔을 다듬어서 만든 골각기 등을 사용하였다. 이들 도구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데, 사냥도구로는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이 있으며, 요리도구로는 긁개, 밀개, 공구로는 새기개 등이 있다. 특히, 충북 단양의 수양개유적에서는 이러한 석기를 만들던 석기제작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코뿔이 사냥모습

석장리에서 조사된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평지의 집자리는 비교적 상세하게 조사가 이루어짐으로써, 구석기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활하였는가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집자리는 담을 쳐서 집을 바깥과 구별하고, 출입하는 문을 만들었으며, 기둥을 세우고 움막을 쳐서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였다. 그 안에 살던 사람의 수는 8~1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집단적인 협동을 통해 동물을 사냥하거나 사나운 맹수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였을 것이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화덕자리가 조사되었는데, 화덕은 둥그스럼한 자갈돌 7개를 둘러 놓았다. 석장리인들은 불을 이용하여 요리를 하고, 추위도 막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집 앞에서는 잔격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석기를 만들던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석장리 주거지에서는 고래를 땅바닥에 새긴 것, 물고기 머리를 떼고 선으로 새기고 눈을 둥글게 돌려 굼파기 한 것 등 예술작품으로 추정되는 유물들도 출토되어 구석기인들의 예술활동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비록, 공주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주거유적이 석장리에서만 조사되었지만, 당시 금강주변에는 석장리와 같은 생활유적들이 곳곳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굴유적인 반포면 마암리의 속칭 '용굴'이란 곳에서도 구석기시대의 생활흔적이 조사되었다. 이 동굴유적은 금강 남안, 계룡산 북쪽 산줄기 사면에 위치한다. 동굴은 높이 20m 가량의 위치에서 입구를 동쪽으로 하고 있으며, 굴 입구의 크기는 너비9m, 높이1m이었으나. 그 안은 길이 24m, 너비 7~12m, 높이 3m이며, 30~50cm 정도의 퇴적층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석영반암(石英斑岩)의 석재로 만든 찍개, 찌르개, 긁개 및 돌날형 박편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석장리유적의 상층과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 동굴유적은 석장리유적과 함께 공주지역에서 생활한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외에도 공주시 시목동,소학동,장기면 금암리 등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이들 지역은 모두 금강과 인접한 곳이다.

석장리 1호 집터 복원도

이와 같이 공주지역은 다양한 구석기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속시기도 구석기 전기부터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구석기인들은 수렵·채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활동영역이 농경인들에 비해 매우 넓은데, 주 생활근거지는 대부분 물이 풍부한 강이나 호수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금강을 끼고 있는 공주지역은 구석기인들의 생활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있었을 것이며, 금강유역에 분포하고 있는 구석기유적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 사람들은 수만년 동안 손을 이용하여 돌을 주 무기나 생활용구로 사용하였는데 자연석 그대로나 그것을 깨거나 떼어서 도구로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나 신석기에 이르러서는 그 돌을 가공하여 쓰임새에 맞도록 비교적 정교하게 만들어 돌과함께 지천에 널린 나무를 가공, 결합하여 사용하였다. 신석기인 들은 농경생활의 시작 외에 구석기인들과 마찬가지로 어로와 수렵 등 채집경제를 유지하였으나 낚시, 그물, 화살, 호미, 돌칼 등의 용구를 발명, 개선하여 어로, 수렵, 채취 시 적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목적물을 획득하게 된다.

정교해진 돌도끼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발명 된 그물과 낚시는 어로생활에 혁명을 이루어 내었으며, 돌화살촉을 이용한 사냥법은 그야말로 효율적인 사냥을 할 수 있는 대 발명이라 할만 하다. 신체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구석기 시대와는 달리,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처럼 기구를 통해 돌팔매보다 파괴력과 정확성을 한층 높이는 생활도구를 만들게 된다. 특히 돌팔매보다 더욱 강력하고 표적에 치명적인 파괴력을 가진 돌화살촉의 등장은 사냥감을 포획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신석기 시대의 명품이라 할만하다.

이처럼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발명 된 그물과 낚시, 돌화살촉은 어로, 수렵생활을 크게 개선 시켰다. 특히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정착된 농경문화는 가히 혁명적으로 생활상의 양태를 바꾸어 놓아 씨족, 부족 등의 집단화를 가능케 하고 공동체 생활을 함으로써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구석기시대의 수렵, 채집경제를 벗어나 농경이나 목축을 기반으로 한 안정된 정착생활을 영위하게 되고, 토기와 마제석기를 사용하고 직조기술을 개발하는 등 보다 발전된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 모든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이와 같은 문화양상이 전개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빗살무늬토기와 마제석기가 사용되었지만, 농경은 보다 늦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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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7-01-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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